"그리움이 깊어가는 어느 밤에"

2015년 7월 말... 아버님의 건강이 최악의 상태에 접어들면서 한국에 있는 어머님과 동생들이 나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죽어가는 아버지와 힘겨워하는 가족을 다 팽개치고 미국이라는 땅에 삶의 붓박이 터전을 잡으려고 허둥대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거다. 어이가 없었을 게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님은 정신줄을 놓으셔서 어머님과 동생들을 참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진영이 왔냐고 심심찮게 확인을 하며 눈물을 흘리셨다는데, 지금도 그 일들을 생각하면 아버님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위장 깊은 곳에서부터 또아리를 틀어 통증을 일으킨다.

나로서도 따로 할수 있는 일이 없어 오직 기도할 뿐이었다. 분명히 주님께서 소명을 주신 지금의 교회에 담임 목사로서의 초청을 이미 받은 상태고 부임 직전의 시간을 임시거처에서 보내던 중이었고, 목회학박사 과정을 마치고 OPT라는 1년간의 취업허가증을 기다리고 있던 시기였다. 이 취업비자는 미국을 일단 나가면 갱신과 재발급이 되지 않아 다시 입국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나와 우리 가족에겐 영구 귀국과 미국 잔류 두 가지 선택 밖에 없었다. 어느 한쪽도 무게가 덜하지 않았다. 이미 상처 받은 국내의 가족을 늦게나마 찾아서 위로하고 아버님의 임종을 지키자면 소명을 받은 교회를, 그것도 한차례 분열후 아픔을 겨우 추스리고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교회를 청빙과정을 다 거친 목사가 버려두고 떠나야 하는 일이었다. 교회를 택해서 머물기로 결정을 하면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한동안 아물지 않을 상처를 주는 일이 될 것이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어느 선택을 하든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과 내 가족에게 상처가 될 일이었다. 쉽지 않은 기도였다. 기도했고 기도했고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얻었다. 신약의 말씀 한 구절이 다가왔다. 눅 9:62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 9:62).

소명이라는 것이 꼭 이렇게 묵직하고 고통스럽게 다가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게는 이렇게 묵직하고 아픈 것이었다. 이 구절이 있는 누가복음 9장 후반부 말씀을 찾아 읽다가 난 또 한 번 울고 말았다. 제자로 부르시는 주님과, 그를 따르겠다는 제자의 응답 즉 부르심과 따름의 순종의 이야기 안에 나의 상황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눅 9:59-62의 내용들이 당시 내가 겪고 있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62절 말씀의 내용만 마음에 깊이 떠올라 신약 성경을 검색해서 찾았는데 말이다.

눅 9:59-62,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아버님 여읜지가 벌써 3년 하고도 6개월이 다 된다. 이젠 거실 책장에 세워둔 아버님 사진 앞에 서면 고통보다는 그리움이 갑절이다. 아버님의 존재가 가까이 계시지 않아 격원한 아쉬움이 크지만 주님의 품에 그의 영혼이 편안히 계시기에 죽음이란 실감은 점차 약해져 감이 마땅하다. 금새 사진 밖으로 나와 "진영이, 이눔에 자식" 하실 것만 같아서, 웃음도 잠간 짓는다.

제자의 길로 나서는 일은 때로 묵직하고도 고통스럽다.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보다 선택의 문제이며, 더 좋고 덜 좋은 것의 차이라기 보다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의 결정에 따라 겪어야 할 필연의 무게인 것이다. 나의 어머님은 평생을 사모로서 살아왔고 그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보다 더 잘 아신다. 두 동생들 역시 전도사와 사모로 그분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삶을 다 내어맡긴 탓에 내 선택의 무게가 어떠한 것인지 모르지 않는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그들이 겪고 짊어져야 할 무게가 더 늘어 늘 미안한 마음이다.

제자의 길은 분명히 선택에 따라 지불해야 할 부채가 발생한다. 그것은 행복이기도 하고, 부담이기도하고, 고통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하며,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시 그것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