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소통"

요즘 한국과 연결되어 있는 소식통은 온통 일본의 한국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일본인 한국을 무역 대상국들 중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함에 따라 양국 모두, 특히 한국이 큰 경제적 손실을 입게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일단 이 사단의 발단은 2005년 그러니까 무려 14년 전에 시작된 미쓰비시/신일본주금에 대한 강제징용 보상 청구소송에 대해 한국 대법원의 2018년 최종 판결이었습니다. 위 일본 기업에 강제 징용노동자들 네 분에 대한 개인적 배상 청구의 책임이 있다고 대법원이 2018년 최종 확정 판결한 것과 더불어, 최근 미국이 G20 의장국인 일본을 제쳐두고 한국을 매개로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간 것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발이 표출된 것이라고 보고들 있습니다. 더불어 최근 일본 우익층 사이에 반한감정(反韓感情)이 자라온 것도 한 배경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역사에 대한 반성은 날카로우면 날카로울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등한시 하면 역사 속에 일하시고, 역사를 통해서 가르치시는 하나님 앞에 교만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왕들과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책망하고 심판하신 것을 유대인들은 몇 세대를 지나지 못해서 망각하기를 반복했고, 결국 왕조의 폐망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특히나 한국의 현대 역사에도 구한말 근대화에 이어진 100여년간의 매우 짧은 정치-사회-경제적 발전 과정에 워낙 격변이 많았는데, 그렇다 보니 신앙의 논으로 반성하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한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겸허하고도 첨예한 반성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또한 저는 이토록 날카로운 역사에 대한 반성을 소통함에 이어서는 반드시 공동체와 개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일본과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요나가 니느웨 백성에 대한 증오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끝내 거부했을 때, 혹은 마지못해 심판의 소식을 전하긴 했으나 결코 그들이 회개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동시에 그런 요나를 끈질기게 추적하시고, 그와 대화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대한 증오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못마땅해 하는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아니하겠느냐?"(욘 3:11).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일본인가요? 죄인가요? 우리에게 누군가를 마음 놓고 미워할 자유가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