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릴에 불을 피우며” - 킹덤 간사 수련회에서

금, 토 양일 킹덤 컨퍼런스 간사 수련회에 와있습니다. 세미나 한 시간을 인도하기 위해서 금요일에 차를 몰아 한 시간 반 정도를 올라왔습니다. GPS에 받은 주소를 입력하고 열어주는 길들을 한 동안 달리다 보니 느닷없이 옥수수가 익어가는 널다란 들판이 펼쳐집니다. 그 들판을 가르는 길 위로 두어 명 남짓이 탈 수 있는 검은색 마차 이른바 Buggy Horse들이 오가고, 길 곁 넓은 밭에는 마소가 농기구를 끌고 있습니다. 순간 이곳이 랜캐스터 일각의 아미쉬 마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미 동부 이곳 저곳에 흩어져 살아가는 청년 간사들이 하나 하나 모여듭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가까이서 얼굴 보며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여러 해 동안 킹덤 컨퍼런스를 섬겨온 간사들이라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보다 더 정겨운 사람들입니다. 얼싸안고 뛰며 환한 얼굴로 인사를 나눕니다. 저녁식사에 이어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았습니다. 저희 교회와도 인연이 깊으신 이진석 목사님께서 저녁 예배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시는 내용이 담긴 본문 말씀(요 11:1-44)을 통해 새롭고도 깊은 깨달음을 주십니다. 

나사로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의도적으로 기다렸다가 내려오신 주님이십니다. 소망의 불이 꺼진, 이미 입구가 막혀 죽음의 냄새로 가득 채워진 우리 안 어딘가에 묻어둔 죽음을 소환해 내기 위해서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를 찾은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닥쳐온 고난과 상처와 슬픔이 대면되고 있는 방식에 주목하십니다.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는 더 더욱 없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이미 무덤 문 뒤에 가두어버린 그들입니다. 그리고는 이 죽음을 예수님(하나님)의 부재탓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음을 말하며 치유되지 못한 못한 트라우마와 상처들에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시간이 익어 둘러 앉았던 이사진과 간사들이 지나온 삶의 근황을 나눕니다. 각자의 고민과 상처와 눈물이 뒤섞입니다. 마음의 어두운 방 속에 가두고, 감춰 두었던 것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놓습니다. 작고 예리한 유리 조각들 같은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매년 많은 젊은 이들의 모임의 공간(킹덤 컨퍼런스)을 지켜왔던 이 조각난 마음들을 언제나처럼 꺼내들고 새로를 어루만집니다. 날카로운 마음이라도 일단 꺼내어들면 어느새 부드러운 살결이 됩니다. 그렇게 서로를 안을 때 부드러운 다름이 모여 하나가 됩니다. 상처와 아픔들이 모여 큰 하나를 이루는 것은 그러고 보면 하나님의 방법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서로 뒤엉켜 기도하며 눈물 흘리던 청년 간사들보다 먼저 일어나 그릴에 불을 피웁니다. 이들의 입에 맛있는 고기를 구워 먹여줄 참입니다.